한반도 덮친 북극 테러
한반도 덮친 ‘북극 테러’… 서울이 모스크바보다 추웠다
[중앙일보 강찬수] 올겨울 추위가 유난하다. 지구온난화로 100년 후에는 남한에서 겨울철이
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무색할 정도다. 새해 들어 16일까지 서울의 평균기온은 영하 6.7도다.
평년기온(1971~2000년 평균)인 영하 2.1도보다 4.6도나 낮았다. 평년보다 기온이 높았던 날은
단 하루도 없었다.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번 추위의 근본 원인은 지구온난화다. 지구가 따뜻해져
북극지방의 기온이 평소보다 10~15도 상승했다. 그래서 북극지방에 쌓인 '열(熱)'이 넘쳐흘렀다.
그런데 이 '열'은 사실은 찬 공기다. 이것이 중위도 지방에 이르러서는 한파가 됐다.
북극의 찬 공기가 넘쳐난 직접 원인은 '북극진동'이다. 북극과 중위도 지방의 기압 차이가 주기적으로
커졌다 줄었다 하는 것이 북극진동이다. 북극이 더워지면서 고기압 세력이 약해지고, 기압 차이가 줄어든
것이다. 기압 차이가 줄면서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둬두던 제트기류가 약해졌다. 지표면 5~10㎞ 상공에서
서에서 동으로 빠르게 돌던 제트기류가 힘이 빠지면서 뱀처럼 꼬불거리게 됐다. 힘 빠진 팽이가
비틀거리는 것과 같다. 이 틈을 타 북극의 찬 공기가 아래쪽으로 쏟아져 내리고 다른 쪽에서는 더운 공기가
북쪽으로 올라가기도 한다.
현재 한반도는 북극 한기가 내려오는 중심축에 걸쳐 있다. 그래서 러시아 모스크바나 중국 베이징보다 남쪽인
서울의 기온이 더 낮다.
부산대 하경자(지구환경시스템학부) 교수는 "한반도와 미국 동부, 유럽 세 곳에서 제트기류가 끊어지거나
힘이 약해져 요동을 치는데, 이것이 폭설·홍수 등 이상기후의 원인이 되고 있다"고 말했다.
여기에다 유라시아 대륙에 쌓인 폭설도 추위에 일조하고 있다. 눈이 태양빛을 반사하면서 공기를 차게 만들기 때문이다.
지구를 자기 조절 능력을 가진 초(超)유기체, 즉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로 보는 '가이아 이론'에 입각해 혹한을
설명하는 학자도 있다. 북극진동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북극이라는 한정된 지역에 과도하게 쌓인 열을 식히려는
지구의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.
하지만 올겨울이 아무리 춥다 해도 큰 기상흐름은 여전히 확연한 온난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. 1910~39년 서울의
겨울철 평균기온은 영하 2.85도였지만, 1980~2009년에는 영하 0.58도로 상승했다. 기상청 정관영 예보분석관은
"1년이나 10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도 기상변화의 폭은 아주 클 수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보려면 30년 이상의
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살펴봐야 한다"고 말했다.
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nvirepo@joongang.co.kr
◆북극진동(Arctic Oscillation)
=북극과 중위도 사이의 기압 차이에 의해 극지방 추운 공기의 소용돌이인 한랭와(渦)가 수십 일 또는 수십 년을
주기로 해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는 현상을 말한다. 북극의 고기압이 약해지면 기압 차이가 줄고 한랭와가 약해진다.
북극 찬 공기를 담아두는 한랭와가 약해지면 한기가 중위도까지 남하해 한반도에는 추운 겨울이 나타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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